[나무가 있는 삶,Life with Trees]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식물, 돌보고 키우고 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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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채화로 동물과 식물을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누누입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해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누누작업실’이라는 이름의 작업실에서 수업도 하고, 굿즈도 만들며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어요. 


작년 말에 아이가 태어나 올 한 해는 육아와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네요. 

최근엔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어 시간 나는 틈틈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 Life with Trees ·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식물,
돌보고 키우고 그린다는 것



긴 터널 끝, 빛이 되어준 그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어요.
"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 무관한 기획 업무를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어요. 

그러다 어릴 적 그림 그릴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퇴사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계속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니라 처음엔 무슨 소재를 그릴지, 어떤 재료로 그릴지조차 막막했죠. 

우선 닥치는 대로 그리다 보니 수채화가 제게 가장 잘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그린 초록 식물이 덕분에 수채화 클래스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한 생명을 돌보고 키운다는 것

결혼과 동시에 지방으로 내려와 아무도 없이 외롭게 지내다 작은 화분 하나를 구입해 보았어요

공간에 초록 식물이 있음으로써 생동감이 넘치는 걸 경험하고 또 다정하게 돌보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한 생명을 돌보고 키운다는 것이 굉장히 보람 있게 다가왔어요.




"많은 분들이 초록 식물과
함께 있는 동물 그림을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처음엔 동물과 식물 각각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어느 순간 그림 속 혼자 있는 동물을 보니 외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초록 식물을 함께 그려 주었는데 생명력이 더해지는 거예요.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많은 분들이 초록 식물이나 꽃과 함께한 동물 그림을 더욱 좋아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식물을 애정하며 키우게 된 지는 이제 3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아직 너무 초보라 잘 하거나 즐긴다고 말하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 매력을 알 것 같아요. 

작업실을 오픈하며 공간 컨디션을 고려한 반려 식물 입양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은 바쁜 육아로 기존 아이들만 키우고 있지만 여유가 찾아오면 행잉 플랜트를 좀 더 키우고 싶어요. 



식물이 삶에 주는 힘

왜 수많은 식물 중에서 이 아이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나 늘 생각해요. 

어떤 부분이 나에게 아름답게 다가왔는지, 구도나 형태, 색감 등을 많이 고민하면 어떻게 그릴지가 머릿속에 그려져요.


색감이 아름다운 꽃은 그 색에 집중하고, 수려한 형태가 매력으로 다가온 식물은 구도와 디테일한 형태 표현에 집중해요. 

그리고 생동감 있는 저만의 포인트를 녹이려 노력해요. 예를 들면 꽃 줄기에 있는 반점같이 대부분은 표현 안 하려 하는 요소도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깊이를 더해요. 





"내 마음을 달래 줘요."


헬레보루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 헬레보루스에겐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주세요, 내 마음을 달래 줘요.'라는 예쁜 꽃말이 있어요. 

식물이 삶에 주는 힘이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의 막다른 곳이라 생각한 지점에서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만났어요. 이제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을 많이 사랑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속해 나갈지 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Interviewed with @nunu_artroom


Edited by Tree Planet




- Words by Tree Planet
"많은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편안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이내 생활이 너무 바빠서, 잘 키우는 손을 가지지 못해서, 쉽게 죽이고 말 거라는 생각에 식물 들이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해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사실 식물 키우기에는 대단한 조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어느 날 꽃집에 들른 당신의 손에 소담한 식물 한 그루가 들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글쓴이 프로

윤정희

늘 명랑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어 나가고 싶은 에디터.

최근 나무만 보면 괜히 설레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무래도 짝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고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