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조성 이야기]KBS 기상캐스터가 전하는 미세먼지 이야기


KBS 기상캐스터가 전하는 

미세먼지 이야기 

-이세라 기상캐스터-



지구 반 바퀴 돌아 만난 이상형

이따금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소개해 줄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그 질문 앞에서 내가 떠올리는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의 한결 같은 취향의 ‘그’는 바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도Sebastião Salgado’이다.


세바스치앙 살가도 (ⓒSebastião Salgado)


세상의 비극을 기록하는 사람

브라질 태생의 세바스치앙 살가도는 1973년부터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세계의 무수한 분쟁 지역과 기근의 현장을 누비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피사체로 담아내 명성을 얻는다. 나 역시 이십대의 어느 날, 심각한 내전과 굶주림 속에 살아가는 사헬 지대의 사람들을 찍은 그의 사진 앞에서 도대체 이 지구에는 얼마만큼의 비탄이 있는 것인지, 나는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개입하고 응답하며 살아야할 것인지를 묻기도 했다.

세바스치앙이 난민들을 찍은 사진 (Sahel: The End of the Road ⓒSebastião Salgado)


세바스치앙이 난민들을 찍은 사진 (Sahel: The End of the Road ⓒSebastião Salgado)



‘인스치투투 테라’
-폐허를 숲으로 만들다

그러나 나를 진정으로 매료시킨 것은 그의 사진이 아니라 삶이었다. 1990년대 초 고향 브라질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상속받은 농장 땅을 방문한 그는 자신이 어릴 적 뛰어 놀며 바깥 세계를 상상하던 그곳이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상실감에 빠진다. 브라질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인해 나무들은 모두 잘려나갔고 초목이 사라지니 그곳을 찾는 새와 야생 동물은 자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때 숲을 이뤘던 땅은 이제 황폐함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때 그의 아내 렐리아(Lélia Wanick Salgado)가 이곳에 다시 나무를 심고 숲을 복원해 보자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낸다. 이후 그들은 유년의 기억 속 작은 생태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성공 여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숲 조성 프로젝트, <인스치투투 테라Instituto Terra>를 시작한다.

세바스치앙 살가도가 찍은 인스치투투 테라의 2000년/2013년 모습 (ⓒSebastião Salgado)


먼저 그들은 민둥산처럼 변해버린 땅에 6개월 동안 25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목표를 세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종의 다양성을 고려해 최소한 200종의 서로 다른 나무를 심어야 했고 그것들이 잘 자라도록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했다. 투자자들의 도움 또한 절실한 상황이었다.

인스치투투 테라에서 세바스치앙 살가도와 그의 아내 렐리아 (ⓒSebastião Salgado)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뒤 1999년 그들은 처음으로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 2010년 즈음 세바스치앙 부부는 그곳에 300종 이상의 나무 200만 그루를 심었고 곤충들과 새들, 동물들이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들이 조성한 숲은 현재 브라질의 자연유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국가의 생태학적 프로그램을 위해 종자를 제공하고 있고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 활용되는 등 세대를 불문한 많은 이들에게 숲의 중요성과 생태계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스치투투 테라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2013년 전경 (ⓒInstituto Terra)


끝없이 자연을 개발하고 영역을 확장하려는 야심 대신 다른 것을 꿈 꿀 줄 아는 남자, 한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인류의 삶까지 풍요롭게 하는 남자. 어떻게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상캐스터 단골 메뉴, 미세먼지

기상캐스터 7년 차에 접어든 요즈음 나는 세바스치앙의 숲,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그의 푸른 꿈 (세바스치앙 부부는 2050년까지 5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더 심으려 한다)을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기상청에서 처음 기상캐스터로 일하기 시작한 2011년에만 해도 나는 ‘미세먼지’라는 말을 방송에서 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미세먼지는 비나 눈, 폭염이나 태풍과 같은 기상 현상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 됐고 방송에서의 언급 빈도수와 국민들의 관심도로는 일 순위 이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 한 달 동안 이삼일에 한 번 꼴로
미세먼지 예보를 한 셈이다.

2017.4.17. KBS 9시뉴스 기상예보, 4월 한 달 동안 내가 미세먼지 농도 ‘나쁨’ 이상을 예보한 날은 총 11일 정도다. 이삼일에 한 번 꼴로 미세먼지 예보를 한 셈이다. (9시뉴스 기준) (ⓒKBS)


아마 많은 캐스터들이 미세먼지 예보를 하는 데 있어 여러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미세먼지가 중요한 기상 이슈로 막 대두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면 방송에서 ‘노약자분들은 장시간 외출을 삼가시라’ ‘오늘은 환기를 잠시 미루셔야겠다’ 등의 몇 가지 고정적 멘트를 쓰곤 했다. 그런데 미세먼지 사태가 장기적 국면으로 접어 들고 ‘과연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내 방송이
기만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세먼지는 노약자만 조심하면 되는 건가? 건강한 사람들은 비교적 지장이 없다면,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고 안받고가 결국 개인의 면역력에 달려 있다는 건가? 또 단순히 창을 닫아걸고 그 순간만 실내에 머물면 되는 문제인가? 직업상 야외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질문을 거듭할수록 결국 내가 지금까지 써 왔던 방송 멘트들을 모두 폐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내 방송이 기만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세먼지 예보를 하게 된 지금, 나는 미세먼지와 관련해 임시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먼저 제도적으로는 국내의 화력 발전소 가동이나 자동차 운행 등 에너지 저감을 위한 규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를 통한 규제는 그 제도와 큰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남일’일 뿐이다.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일부가 아닌, 전 세대의 노력과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시의 1인당 도시숲 면적은
세계 주요 도시와 비교했을 때
많게는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강제성을 띤 법적 규제와 반드시 함께 가야하는 것은 자발적인 실천인데 그 중 하나가 도심 녹음 지대 즉 도시숲을 조성하는 것이다. 도시숲은 열섬 현상을 방지하고 자동차 소음과 같은 각종 생활 소음을 감소시키며 대기를 정화시킨다. 국림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숲은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42%를 흡수한다.

굳이 이런 수치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나무와 숲이 지닌 자정 능력을 알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도시숲 면적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작다. 2015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1인당 도시숲 면적은 4.34m²로 런던(27m²), 뉴욕(23m²), 파리(13m²) 등 세계 주요 도시와 비교했을 때 많게는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기준(9m²)에도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파리의 대표 도시숲 중 하나인 뤽상부르그 공원 (ⓒRdevany)


도시숲을 조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론 민관협력이다. 정부 기관은 전문가, 민간 업체 등과 폭넓게 협업해 구체적으로 도시의 어느 곳에 녹지를 조성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지, 수종의 종류나 양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를 연구조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시민들은 하나의 문화 이벤트 또는 놀이의 일환으로 실제 묘목을 심어볼 수 있다. 소셜 펀딩과 같은 기부 활동을 통해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는데 관여할 수도 있다.

최근 트리플래닛과 함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미세먼지 방지숲 조성 캠페인을 시작했다.

집에 화분을 놓을 생각은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나무로
감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한때 몸속에 들어온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삼겹살이 불티나게 팔렸던 때가 있다. 최근에는 식물이 공기를 정화시킨다며 집집마다 화분을 들여놓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집과 방에 화분을 놓을 생각은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나무로 감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집보다도 더 염려스러운 것은 바깥이고, 실제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도 집 밖일 텐데 말이다.

대기질이 좋았던 지난 5월 14일 서울 하늘


세바스치앙과 그의 아내 렐리아가 죽은 땅을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으로 바꾸어 놓은 일이,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바스치앙이 고향의 파괴된 생태계와 헐벗은 땅을 목도했을 때 느꼈을 절망감은 지금 우리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맑은 공기 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싶다는 열망, 삶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씁쓸함,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이 아닌가?


미세먼지와 관련한 불편한 진실


그런데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면, 많은 분들이 물으실 것 같다.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미세먼지를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이른바 ‘중국 책임론’이다. 한 번씩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질이 좋지 않다’라고 방송을 한 날은 무수한 악플이 달리곤 한다. ‘중국 탓인데,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다음과 같다. WHO가 1군 발암 물질로 지정한 초미세먼지는 중국발보다 국내발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2017년 4월 7일자 KBS뉴스, 「초미세먼지 영향, 국내 47%, 中41%, 北12%」) 나사(NASA) 연구진에 따르면 평소에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2016년 6월 9일자 KBS뉴스, 「NASA “서해 석탄 화력·정유시설이 미세먼지↑”」).

그리고 설사 미세먼지와 관련해 중국의 영향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으로 인해 발생한 미세먼지가 70%건 80%건 나머지 20, 30%는 결국 우리 책임이다. 또한 발생 자체는 중국에서 한 미세먼지 일지라도 일단 한반도로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된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를 따질 시간에,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우리가 숲을 만들고
자연을 보호한다면,
자연은 더 큰 팔을 벌려
인간을 보호해준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선언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연 앞에 야심찬 포식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겠다 약속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들이 지닌, 인간의 그 어떤 기술보다 더 뛰어난 능력 앞에 경이를 표하고 겸손한 삶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숲을 만들고 자연을 보호한다면 자연은 더 큰 팔을 벌려 인간을 보호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이 보호의 연쇄, 내가 기대를 거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이세라

@seraweather

2011년부터 기상캐스터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KBS 5시, 9시 뉴스에서 날씨를 전하고 매주 토요일엔 <영화가 좋다> ‘도도한 영화’ 코너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