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조성 이야기]나의 커피나무 농장을 찾아서, 네팔 피칼 마을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어디에 심고 싶나요?”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가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에 내 나무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한 번씩 그 나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팔의 동쪽,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커피나무를 심게 된 건 그래서였다.

[Make your farm] 네팔에 당신의 커피나무 농장을 만드세요!



나의 아라비카 커피나무를 만나러 떠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묘목장에서 자라고 있는 내 나무의 사진이 전해져 왔다.
가을이면 농장으로 옮겨 심어질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엽서를 받아 본 순간, 아직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묘목, 가볼 일 없을 곳에 심은 그 어린 나무가 그곳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되어버렸다.
가을, 나는 네팔로 떠났다.

<Make your farm 더치커피와 함께 전해져 온 엽서. 나의 아라비카 커피나무>



네팔, 커피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인천에서부터 6시간을 날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낯선 듯 익숙하고 익숙한 듯 낯선 이 도시도 매력적이었지만, 이 나라 어딘가에 내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 그 나무를 만나러 내가 직접 이곳에 와 있다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도 차도 건물도 많은 카트만두는 알록달록한 색채를 지닌 도시이다.>


다음 날 아침.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태어나 타본 것 중 가장 작은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을 날아갔다.
여기가 네팔이라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열대 식물들, 11월에도 덥게 느껴지는 날씨는 확실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네팔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바드라 푸르 국내선 공항. 건물도 없이 활주로에 내려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일람 지역의 평야 지대에는 네팔에서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다시 산을 오르자 10분마다 몸에 와 닿는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열대나무가 보이지 않게 되고, 커다란 삼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팔의 동쪽. 드넓게 펼쳐진 푸른 산과 능선을 따라 곧게 자라는 삼나무가 만드는 풍경>


피칼 마을, 그리고 피칼 사람들

마침내 도착한 피칼 마을. 그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차밭과 낮에도 어두울 만큼 깊이 우거진 삼나무 숲, 그리고 소박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찻잎을 담는 ‘도꼬’를 머리에 쓰고 해맑게 웃음 짓는 귀여운 소녀 '데끼 라무 따망'>

<삼나무 숲을 지키는 '바이준' 씨와 '카르마' 씨.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베지 않도록 하고, 매년 더 많은 나무를 심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 커피와 쿠키로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 '릭딘(왼쪽에서 두 번째)' 가족>


도착한 시간은 마침 학교가 마치는 오후였다. 마을 입구 작은 공립학교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망울과 눈부시게 예쁜 미소. 이곳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하굣길, 카메라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아이들>

<커다란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던 '디테스'. 집까지는 걸어서 1시간 반이 걸린다며 씩씩하게 출발했다.>

<부모님이 농사일로 아기를 돌볼 수 없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등교하는 기특한 언니 '살리나'>


커피나무 농장의 수익금 일부는 이곳 학교에 투자된다. 농부들이 자녀 양육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자, 아이들이 더 많은 꿈을 갖게 해주기 위함이다. 내가 심은 커피나무는 단순히 커피만 맺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의 미래도 함께 맺어가는 나무였다.


드디어 만난 내 농장, 내 커피나무

다음 날 아침, 네팔의 가정식 달밧으로 식사를 한 뒤 농장으로 향했다.
숙소로 머물렀던 선샤인 빌라에서 농장까지는 걸어서 40분.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산길을 가야 하고,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평소 산을 오르던 사람이 아니면 조금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네팔의 가정식 '달밧'. 밥에 콩스프를 올리고 고기, 나물 반찬과 함께 먹는다. 손으로 먹기에도 편한 음식이다.>


동쪽 산 위에 걸려있던 해가 중천에 오르고,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안개가 걷힐 무렵, 드디어 커피나무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48시간. 드디어 나의 커피나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피칼 마을 커피나무 농장. 2,000여 명의 농장주가 크라우드 파밍을 통해 함께 조성했다.>

<투명한 햇빛과 푸른 바람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는 아기 커피나무>

<인도의 다즐링과 가까운 피칼 마을. 차와 커피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고도와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농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묘목장에는 아직 옮겨 심어지지 않은, 더 작은 묘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묘목들은 새로운 농장주의 이름으로, 1년 생이 되는 올 6월 농장으로 옮겨 심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보내온 엽서와 함께. 안녕, 아기 커피나무>

<'Make your farm', 당신의 특별한 커피나무 농장을 만드세요.>


커피나무는 다른 작물과 달리 뿌리가 깊고 여러 해를 사는 '나무'이다. 또한 그늘을 지어 줄 다른 나무와 함께 섞여 자랄 때 더 잘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한다. 잘 가꾸어진 커피나무 농장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숲'과 같다. 그리고 이 숲은 이곳에서 자주 발생하는 산사태를 막아 농가의 피해를 줄여주고, 작물 재배로 파괴된 산간지역을 다시 푸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커피 그 이상의 아주 특별한 커피

지금도 네팔의 동쪽에서 푸른 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있을 나의 커피나무를 떠올려 본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깨끗하게 내린 커피를 마실 때면 한 뼘밖에 자라지 않은 그 나무가 생각났고, 초록빛 피칼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반짝이는 미소가 그려졌다.

1년에 두 번, 내 농장으로부터 커피를 받아본다.
아직 내 나무에서 나온 커피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진하게 담긴 네팔 커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커피이지만 왠지 이 커피만큼은 한 잔 한 잔, 소중하게 마시게 된다.


<크라우드 파밍에 참여하고 리워드로 받은 네팔 더치커피, 그리고 한국에서도 키우기 시작한 커피나무 한 그루>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어느 낯선 곳에서 따뜻하게 환영받고 그 안에 속한다는 것.
어딘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일상에 지칠 때마다 떠올릴 곳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작게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네팔에 커피나무를 심은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2019년 봄, 나의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나에게 처음 만들어줄 커피를 기다리며.


<슈리 라스트리야 스쿨 저학년 반 '수상'. 처음에는 옆에도 잘 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떠날 때는 가장 아쉬워해주었다.>


글쓴이 프로필

김가은


환경 문제는 나무가 아닌 기술이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던 회의론자. 트리플래닛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들, 초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따뜻한 낙관론자가 되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말은 '사람은 쓸 데 없는 짓을 해도 나무는 필요 없는 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