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있는 삶,Life with Trees]조용하고 생명력 넘치는 식물들의 복닥복닥 러브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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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제 마음에 드는 공간을 사랑하고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취향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강아지 둘, 고양이 둘, 남편, 그리고 130여 개의 식물들과 복닥복닥 살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물들 상태부터 확인해요. 요즘은 갑자기 날이 건조해져서 더 신경이 쓰입니다. 식물 살피기가 끝나면 네발 동물들 차례예요.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가죠. 오전에 챙겨둬야 오후에 외출을 해도 마음이 좀 편하거든요. 멍집사, 냥집사, 식집사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 Life with Trees ·

조용하고 생명력 넘치는 식물들의

복닥복닥 러브하우스




눈이 닿을 때마다 즐거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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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적인 만족감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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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거실 창밖 소나무와 차 없는 조용한 산책로가 마음에 들어 이 집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미니멀하게 꾸미려고 그에 맞게 인테리어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핀터레스트에 저장해둔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니 저는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적당히 빈티지하고 나무와 초록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매일 쓰는 물건일수록 가장 마음에 들고 좋은 물건을 쓰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 종일 머무는 집이 심미적인 만족감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눈이 닿는 곳마다 제 취향의 사진과 소품을 배치하고, 좋아하는 조도의 조명과 푸릇푸릇한 식물이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됐어요. 최근에는 방 두 개를 각각 제 침실과 작업실로 꾸며서 주로 그 두 곳을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작은 방이지만 자주 구조를 바꾸고, 소품을 재배치하는데요. 눈이 닿을 때마다 즐거운 공간에서 지내는 만족감이 상당합니다.




생명력 가득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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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모일수록 양감이 생기면서

생명감도 더 강하게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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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많이 지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접한 책에 감명을 받고 식물을 본격적으로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식물을 들려 실제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고 있는 작가님의 에세이였는데요. 당시 남편 건강 회복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식물을 키우며 마음을 돌볼 수 있다는 점에 강하게 끌렸어요.



처음엔 화분 몇 개로 한쪽 구석에 배치했는데, 그 푸릇푸릇함이 너무 좋아서 또 다른 코너에 배치하고, 그러다가 아예 거실 한쪽 벽면 가득 식물을 놓게 됐어요. 그러다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알맞은 환경만 만들어준다면 해가 좀 덜 드는 방에서도 키울 수 있겠다 싶어서 방에도 또 하나씩 들이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식물이 모여 있을수록 양감이 생기면서 생명감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그 느낌에 매료된 것 같아요.



게다가 매력적인 식물이 오죽 많아야 말이죠. 이렇게 식물이 많아진 데는 맘에 드는 식물을 전부 가까이 두고 싶다는 제 욕심이 큰 몫을 했어요.




생명력 가득하고, 조용하지만 복닥복닥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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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여기저기서 기분 좋다고

표시하는 생명체가 130개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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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화원에 나갔다가 구석에 방치된 아주 작은 장미허브를 발견했어요. 사장님이 그낭 가져가라고 하셔서 집에 와 작은 토분에 심고 남편 책상 바로 앞에 뒀었습니다. 남편은 저처럼 식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물을 주려고 잠시 옮긴 사이에 '그 작은 화분 어디 갔느냐'라고 저한테 묻더라고요. 

바로 눈앞에 두니 나름 신경이 쓰였었나봐요.



이파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문질 하면서 허브향을 맡기도 하고, 이파리가 오동통하지 않을 땐 물을 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수많은 식물을 두고, 제가 종종 식물 이야기를 해도 크게 반응하지 않던 남편이 모니터 앞에 놓은 아주 작은 장미허브에 신경 쓰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거창하고 비싸고 멋진 화분 말고, 온순하게 잘 자라면서 좋은 향도 내주는 작은 화분을 가장 눈이 많이 닿는 곳에 두는 거예요. 이렇게 작게 시작해서 식물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게 되면, 어느 순간 식물이 많은 곳이 좋아서 그런 곳만 찾아다니게 되실 거예요.



강아지는 애교를 부리고 고양이는 골골대며 기분 좋음을 표시하잖아요. 식물은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새 잎을 내고 가끔은 꽃도 피우면서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식물이 저한테 기분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집 안 여기저기서 기분 좋다고 표시하는 생명체가 130개나 있다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생명력 가득하고 조용하지만 복닥복닥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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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단단하고,

설레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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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게 식물 키우는 일은 잠시 흥미를 갖고 몰두하는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 됐습니다. 식물을 가꾸는 일이 제게 에너지를 주는 데요. 이 일을 매일 지속하다 보니, 이게 업무적으로도 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막연하게 그리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개인적인 큰 고비를 넘기고 식물을 통해 안정을 되찾으면서 좀 더 단단하고 설레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단단함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집에 식물을 가득 들이고 나니까, 나만의 작은 정원을 두고 싶어졌어요. 이전에는 막연하게 상상했다면 지금은 정원 한구석에 유리온실을 두고, 그 안에서 식물을 돌보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흙을 만지고 생명을 돌보는 일이 제 삶에 너무나 소중해졌어요.


내년엔 제주로 이주해서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정원 있는 삶을 살게 될지, 아니면 정원 있는 삶은 좀 더 나중의 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생생하게 그리는 미래가 생겼다는 것 자체로 이미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반드시 이룰 것 같습니다.





Interviewed with @gonnatrip
Edited by Tree Planet




- Words by Tree Planet

"많은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편안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이내 생활이 너무 바빠서, 잘 키우는 손을 가지지 못해서, 쉽게 죽이고 말 거라는 생각에 식물 들이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해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사실 식물 키우기에는 대단한 조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어느 날 꽃집에 들른 당신의 손에 소담한 식물 한 그루가 들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글쓴이 프로필

윤정희

늘 명랑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어 나가고 싶은 에디터. 최근 나무만 보면 괜히 설레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무래도 짝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고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