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화가 조아나입니다.
강아지풀 스케치 ©anasdrawer
요즘 일주일에 5일은 숲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희망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단기간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1지망으로 넣고 가고 싶은 곳인 에코뮤지엄을 2지망으로 넣었는데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배정되어 "아, 이제 식물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구나" 싶더라고요. :-)
살구 ©anasdrawer
덕분에 마음껏 식물을 만나며 여가 시간에는 대부분 보태니컬아트 작업을 합니다. 틈틈이 식물 식구들을 돌보면서요. 이렇게 보니 요즘 제 일상은 온통 '식물'과 연결되어 있네요.
· Life with Trees ·
식물을 어루만지고 기록하며,
흘러가는 계절을 걷는 법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성
"
순간 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마치 사람처럼요.
"
구억배추꽃 ©anasdrawer
보태니컬 아트는 botanical(식물의, 식물학의) + Art(예술)로 식물학과 예술이 결합된 장르를 말해요. 우리가 식물도감에서 볼 수 있는 식물화에서 출발했는데, 해외에서는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식물 세밀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만 '세밀'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데, 꼭 이 표현을 써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세밀하다는 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꼭 전문적인 그림이어야만 세밀한 것도 아니니까요.
장미 과정컷 ©anasdrawer
식물세밀화(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 식물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식물 그림이라면, 보태니컬아트는 조금 더 개념을 확장해서 식물의 구조와 형태를 관찰하여 이해한 걸 바탕으로 작가만의 시선과 감성을 더해서 예술적으로 풀어낸 식물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미 ©anasdrawer
식물은 제 곁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소재예요.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고 이파리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지는 마지막 모습까지, 순간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마치 사람처럼요.
놓쳐버리고 말 식물의 순간들
"
식물을 어루만지는
제 모습이 좋아요.
"
예전에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큰 밑거름이 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저 역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때때로 마음에 울려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더라고요.
손바닥선인장 열매 ©anasdrawer
그런 순간들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소중하게 간직해두고픈 마음에 쓰고 그리기 시작했고, 식물도 그런 관점에서 그리려고 노력해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말 식물의 순간들, 우리의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식물을 찾고 관찰하고 기록하려고 해요.
뿌리 ©anasdrawer
식물을 그리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제가 살던 원룸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식물 키우기를 꺼렸거든요. 그러다 퇴사하면서 화분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너무 잘 자라주는 거예요. 난 정말 별로 한 게 없는데 알아서 잘 커 줘서 기특했어요. 물론 우연히 제 방의 환경과 식물이 딱 들어맞았을 수도 있죠. 그게 줄리아 페페로미아예요.
이제 막 시작한 초보식물집사라 즐기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식물을 즐겁게 배우고 알아가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초록이들 컨디션을 먼저 살피게 돼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베란다로 나가서 밤새 잘 지냈는지 오늘 물을 주어야 하는 녀석은 누구인지 한참을 살펴요. 아직은 식물을 다루는 게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식물을 어루만지는 제 모습이 좋아요.
계절을 걸어가는 법
"
발걸음 닿는 곳곳이
나만의 식물원이에요.
"
작약 ©anasdrawer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 길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들풀과 들꽃, 극히 일부만 알던 식물의 또 다른 모습들. 예를 들면 열매채소가 꽃을 피웠을 때의 모습이라든지요.
파인애플(좌) / 구억배추꽃(우) ©anasdrawer
다듬어지고 갖추어진 식물도 아름답지만, 아파트 화단이나 동네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꽃과 풀도 충분히 아름답답니다. 또 나만의 베란다 정원에서 만나는 식물들도요. 발걸음이 닿는 곳곳에 식물이 가득하잖아요. 그곳이 모두 나만의 식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anasdrawer
어른들이 왜 그렇게 시간을 내어 자연을 찾아가는지, 왜 그렇게 꽃과 나무 사진을 찍으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 공감해요. 삶이 풍요로워지거든요. 무엇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정신없이 살 때는 잊고 살았던 걸 자연 속에서 다시금 배우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억지로 꾸미지 않고 계절을 걸어가는 법을요.
"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온전히 느끼기.
"
제주가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자연 가까이에 살았는데 그때는 그게 좋은 건 줄 몰랐어요. 푸른 산이 주었던 기운과 바다가 주었던 감성을 뒤늦게야 찾았죠.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스톡 ©anasdrawer
식물을 그리면서는 그 마음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작은 식물 앞에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한껏 고개를 숙여 식물과 눈높이를 맞추며 식물을 찍어요. 그러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뭘 그렇게 열심히 찍나 힐끗 쳐다보고 가시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제게는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순간이 된 거죠.
해바라기 ©anasdrawer
마음이 흔들리거나 느슨해질 때 되새기는 구절이 있어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용 23장
손바닥선인장 ©anasdrawer
라일락 ©anasdrawer
흘러가는 계절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굳이 지나온 시간을 끄집어내지 않기.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온전히 느끼기.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 오늘을 소중히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어요.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고 정성껏 마음을 담아서 바라보고 그림으로 글로 기록하려고 해요.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식물을 그리고 쓰는 일을요.
Interviewed with @anasdrawer
Edited by Tree Planet
- Words by Tree Planet
"많은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편안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이내 생활이 너무 바빠서, 잘 키우는 손을 가지지 못해서, 쉽게 죽이고 말 거라는 생각에 식물 들이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해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사실 식물 키우기에는 대단한 조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어느 날 꽃집에 들른 당신의 손에 소담한 식물 한 그루가 들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글쓴이 프로필
윤정희
늘 명랑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어 나가고 싶은 에디터. 최근 나무만 보면 괜히 설레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무래도 짝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고심중이다.
안녕하세요,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화가 조아나입니다.
강아지풀 스케치 ©anasdrawer
요즘 일주일에 5일은 숲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희망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단기간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1지망으로 넣고 가고 싶은 곳인 에코뮤지엄을 2지망으로 넣었는데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배정되어 "아, 이제 식물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구나" 싶더라고요. :-)
살구 ©anasdrawer
덕분에 마음껏 식물을 만나며 여가 시간에는 대부분 보태니컬아트 작업을 합니다. 틈틈이 식물 식구들을 돌보면서요. 이렇게 보니 요즘 제 일상은 온통 '식물'과 연결되어 있네요.
· Life with Trees ·
식물을 어루만지고 기록하며,
흘러가는 계절을 걷는 법
"
순간 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마치 사람처럼요.
"
구억배추꽃 ©anasdrawer
보태니컬 아트는 botanical(식물의, 식물학의) + Art(예술)로 식물학과 예술이 결합된 장르를 말해요. 우리가 식물도감에서 볼 수 있는 식물화에서 출발했는데, 해외에서는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식물 세밀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만 '세밀'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데, 꼭 이 표현을 써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세밀하다는 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꼭 전문적인 그림이어야만 세밀한 것도 아니니까요.
장미 과정컷 ©anasdrawer
식물세밀화(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 식물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식물 그림이라면, 보태니컬아트는 조금 더 개념을 확장해서 식물의 구조와 형태를 관찰하여 이해한 걸 바탕으로 작가만의 시선과 감성을 더해서 예술적으로 풀어낸 식물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미 ©anasdrawer
식물은 제 곁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소재예요.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고 이파리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지는 마지막 모습까지, 순간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다워요. 마치 사람처럼요.
"
식물을 어루만지는
제 모습이 좋아요.
"
예전에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큰 밑거름이 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저 역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때때로 마음에 울려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더라고요.
손바닥선인장 열매 ©anasdrawer
그런 순간들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소중하게 간직해두고픈 마음에 쓰고 그리기 시작했고, 식물도 그런 관점에서 그리려고 노력해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말 식물의 순간들, 우리의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식물을 찾고 관찰하고 기록하려고 해요.
뿌리 ©anasdrawer
식물을 그리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제가 살던 원룸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식물 키우기를 꺼렸거든요. 그러다 퇴사하면서 화분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너무 잘 자라주는 거예요. 난 정말 별로 한 게 없는데 알아서 잘 커 줘서 기특했어요. 물론 우연히 제 방의 환경과 식물이 딱 들어맞았을 수도 있죠. 그게 줄리아 페페로미아예요.
이제 막 시작한 초보식물집사라 즐기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식물을 즐겁게 배우고 알아가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초록이들 컨디션을 먼저 살피게 돼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베란다로 나가서 밤새 잘 지냈는지 오늘 물을 주어야 하는 녀석은 누구인지 한참을 살펴요. 아직은 식물을 다루는 게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식물을 어루만지는 제 모습이 좋아요.
"
발걸음 닿는 곳곳이
나만의 식물원이에요.
"
작약 ©anasdrawer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 길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들풀과 들꽃, 극히 일부만 알던 식물의 또 다른 모습들. 예를 들면 열매채소가 꽃을 피웠을 때의 모습이라든지요.
파인애플(좌) / 구억배추꽃(우) ©anasdrawer
다듬어지고 갖추어진 식물도 아름답지만, 아파트 화단이나 동네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꽃과 풀도 충분히 아름답답니다. 또 나만의 베란다 정원에서 만나는 식물들도요. 발걸음이 닿는 곳곳에 식물이 가득하잖아요. 그곳이 모두 나만의 식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anasdrawer
어른들이 왜 그렇게 시간을 내어 자연을 찾아가는지, 왜 그렇게 꽃과 나무 사진을 찍으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 공감해요. 삶이 풍요로워지거든요. 무엇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정신없이 살 때는 잊고 살았던 걸 자연 속에서 다시금 배우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억지로 꾸미지 않고 계절을 걸어가는 법을요.
"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온전히 느끼기.
"
제주가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자연 가까이에 살았는데 그때는 그게 좋은 건 줄 몰랐어요. 푸른 산이 주었던 기운과 바다가 주었던 감성을 뒤늦게야 찾았죠.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스톡 ©anasdrawer
식물을 그리면서는 그 마음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작은 식물 앞에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한껏 고개를 숙여 식물과 눈높이를 맞추며 식물을 찍어요. 그러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뭘 그렇게 열심히 찍나 힐끗 쳐다보고 가시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제게는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순간이 된 거죠.
해바라기 ©anasdrawer
마음이 흔들리거나 느슨해질 때 되새기는 구절이 있어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용 23장
손바닥선인장 ©anasdrawer
라일락 ©anasdrawer
흘러가는 계절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굳이 지나온 시간을 끄집어내지 않기.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온전히 느끼기.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 오늘을 소중히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어요.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고 정성껏 마음을 담아서 바라보고 그림으로 글로 기록하려고 해요.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식물을 그리고 쓰는 일을요.
Interviewed with @anasdrawer
Edited by Tree Planet
- Words by Tree Planet
"많은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편안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이내 생활이 너무 바빠서, 잘 키우는 손을 가지지 못해서, 쉽게 죽이고 말 거라는 생각에 식물 들이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해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사실 식물 키우기에는 대단한 조건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어느 날 꽃집에 들른 당신의 손에 소담한 식물 한 그루가 들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글쓴이 프로필
윤정희
늘 명랑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어 나가고 싶은 에디터. 최근 나무만 보면 괜히 설레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무래도 짝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고심중이다.